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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고령가 살인사건> 실제 사건 인터뷰

모호 2024. 3. 26. 19:42

 

<관인건의 시선> 고령가 살인사건을 되돌아보다

국제 영화계에서 ‘뉴웨이브’는 대만영화의 황금기로 평가받고, 그 중 허우샤오셴과 에드워드 양은 이를 대표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미국에서 거주하고 2007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양의 작품은 대만에서 많이 상영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대만의 시네필들은 허우샤오셴의 작품에 비해 그의 작품에 낯설다. 특히, 에드워드 양의 4시간으로 긴 러닝타임인 역사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대만 관객들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현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25주년을 맞이했다. 당시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영화관에서 전부 상영하지 못했고, 어두운 색감으로 비디오 테이프에 잘 보존되지 못했다. 하지만 리마스터링 상영은 이미 금마영화제, 성품 영화관 등 대형 극장에서 많은 스크린을 차지했다. 타이완의 역사를 훑어보고 싶은 타이완 사람들은 확실히 기뻐할 일이다. 이 영화는 타이베이 고령가에서 발생한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같은 학교에 재학했던 살인자와 피해자를 다른 학교 학생으로 연출하는 등 실제 사건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살해 현장 근처에 있던 미국 신문사

1961년 6월 15일 밤 10시, 타이베이 시 경찰국 제 7지사(이후 타이베이 시가 행정원 직할시로 승격한 이후 구팅 지사로 바뀌었다. 현재의 중정 제2지사) 주간 근무를 선 경찰 후원이 및 형사 천한잉은 길에서 고령가 5항 10호 후문에서 스카우트복 차림의 여학생이 살해당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살해현장의 근처에 미국 신문사가 있어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찰들은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하니, 한 소년이 여학생의 시체를 끌어안으며 자기 여동생이라고 했다. 경찰이 급히 차를 빌려 대만대학교 병원으로 이송하여 10시 20분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여학생은 병원에 도착하기 전 이미 사망했다.

사망 선고를 듣고 소년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자, 형사 천한영이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소년에게 다시 한 번 그녀와 무슨 관계냐 물어보았다. 소년이 “오빠예요, 약혼자이기도 해요.” 형사는 즉시 소년을 체포하여 지사에 구류해 심문을 시작했다.

경찰 측의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기륭로 2단에 살고, 건국중학교 2학년 갑반의 학생 리우밍(15세, 산동 출신)으로, 피해자의 오빠라고 주장하던 살인범은 남항구장로의 중앙연구원 외부 숙소에 사는 건국중학교 2학년 병반 마오우(16세, 저장 출신)이다. 그는 경찰서에서 자백했다.

“1960년 3월 28일, 남항공로에서 버스를 타고 중정로 회계부 앞에서 환승할 때 옆반인 리우민을 마주쳤다. 5월 1일 건국중학교에서 그는 1교시 쉬는시간에 그녀가 복도를 지나갈 때 “사랑해”라고 쓴 종이 한 장을 주었고,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조지중학교 3학년 남자친구가 따로 있었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후에 그녀는 ‘마음이 변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거야.’라며 그와의 관계도 정리했다. 그리고 작년 12월 31일 저녁, 그녀와 삼장리 삼흥초등학교 옆 큰 나무 밑에서 밀회를 가졌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는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 데이트할 때 그녀는 임신할까 무섭다며 키스까지만 했다.

칼싸움을 부른 삼각관계

“리우밍은 전 남자친구와 헤어졌지만, 건국중학교 2학년 을반의 한 남자애도 내 여자친구에게 구애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남자애는 “해적파”로, 그에게 대항하기 위해 나는 옥칼, 여자친구에게는 소옥이라는 이름을 정했다. 나와 그녀는 굳게 엮인 옥구슬이라는 뜻이다. 작년 7월 종업식, 나와 리우밍은 모두 유급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위해 벽옥파를 만들어 해적파에 대항했다.

“우리 파에서 난 막내이지만, 결정을 내리는 걸 맡고 있다. 보스는 애들을 이끌고, 장법은 이천민, 또 공위, 천츠허우가 있다. 우리는 “홍단즈(우리 파의 명단)”을 썼고, 향을 다섯 개 피웠다. (각각 하늘, 땅, 보스, 막내, 장법에게) 해적파와 “단도(일대일 싸움)”을 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학교에서 문제아가 되었다.

“올해 4월 12일, 나는 책가방 안에 주머니칼을 넣어 와서 교관 선생님이 소지품 검사를 했다. 나와 리우밍은 가끔 데이트를 했지만,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다. 여자친구는 뜻밖에도 우리 반의 마지션과 사이가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같은 반 친구 콩위에게 부탁해 마지션과 어젯밤 남창로에 있는 빙수집에서 담판을 지었다. 리우밍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고, 우리 둘은 그날 밤 남해로 미국신문사 앞에서 단도를 했다.

“마지션이 일본도를 가지고 나왔다는 콩위의 얘기를 듣고 손덕웅의 집에서 작은 접이식 칼을 가지고 나와서 왼쪽 허리춤에 차고 신문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션은 같은 파가 도와주러 나오지 않았는지 군차를 신문사 앞에다 두고 그대로 튀었다.

“마지션은 결국 오지 않았고, 마침 하교 중이던 리우밍을 마주쳐서 그녀와 함께 고령가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너가 마지션이랑 헤어졌으면 좋겠어.” “너 알 바 아니야.” “그럼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너가 날 죽일 수는 있어?” “그러지는 못하지.” 그러나 내가 그녀에게 헤어지라고 4번이나 요구했지만 그녀는 계속 거절했고, 난 홧김에 칼을 뽑아서 그녀의 흉부를 찔렀다. 이어서 이마 쪽을 두 번 찌르고,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또 등을 두 번, 어깨를 두 번 찔렀다. 나는 그녀가 입은 교복이 피투성이가 될 때서야 칼질을 멈추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홀어머니가 가해자에 중형을 요구하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발생 후, 전국이 발칵 뒤집혀졌다. 사망자의 부친 리우저원(산동 이수이 사람)은 화이하이 전투*에서 통신관을 맡은 사람으로, 1948년 겨울, 한 전투에서 패배하고 통신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자결했다. 모친 천칭화는 2살의 외동딸 리우밍을 데리고 중화민국 군을 따라 대만에 왔고, 홀로 13년 동안 딸을 키웠다.

*화이하이 전역: 제2차 국공 내전 후기에 중화민국 국군에 대항해 중국공산군이 벌인 3대 전역 중 하나다.

매일 밤, 천칭화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딸을 기다렸다 함께 집에 갔다. 6월 15일 저녁, 그녀는 12시까지 딸을 기다렸지만 막차가 끊길 때까지 딸이 오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한 이웃이 뛰어와서는, “경찰이 당신 집에 왔어요. 리우밍이 살해당했대요. 대만대 병원에서 사망했대요. 빨리 가보세요.”

천칭화는 큰 충격을 받았고, 병원에 가서 딸아이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않았다. 그녀의 여동생은 대만대병원에서 그녀를 계속 기다렸지만 새벽 2시가 되도록 오지 않아서, 삼륜차를 타고 그녀의 집에 갔더니 이미 금을 삼키고 자살해 있었다. 여동생이 재빨리 삼륜차로 그녀를 대만대병원으로 데려갔고,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에서 반지를 찾아 바로 수술을 진행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두 모녀가 한날에 대만대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것이다.

리우밍의 시신은 타이베이병원 검찰관 장경청과 검시관 고곤옥이 부검해 마오우가 살해한 것임을 밝혔다. 총 7번 중 흉부에 찔린 한 번이 치명상이었다. 시신은 부검이 끝나고 시립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7월 11일 검찰 장경청은 타이베이 검찰청에서 수사를 마무리했고, 피고 마오우를 형법 271조 1항 살인죄로 기소했다. 기소장 중에는, “피고 마오우는 비행청소년으로, 여자친구가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칼로 7번 찔렀다. 성격이 포악스럽고, 잔혹성이 심각하니, 판사는 중형을 내려 분명하게 교훈을 주어야 한다.”라 적혀 있었다.

7월 31일 오전, 타이베이 형사지방법원의 판사 갈의재가 재판을 시작했다. 구류된 피고 마오우가 심문을 받았고, 증인 손덕웅, 마지션, 콩위, 제7지사 형사 천한잉, 순사 후원이, 피해자 리우밍의 모친이 증언했다. 천칭화는 법정에서 마오우에게 중형을 선고해 달라고 울며 호소했다. “내 딸이 이미 죽어 돌아올 수 없는데 피고 측에서는 조금도 보상을 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며칠 후인 8월 7일은 고인 리우밍의 15살 생일이었다. 이하는 담당 판사 갈의재의 판결문이다.

피고 마오우시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로, 교화할 수는 있지만 처벌할 수는 없으며, 형법 63조 1항의 규정에 따라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할 수는 없다. 다만 피해자가 뜻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칼로 7번 이상이나 찔러 죽인 행위는 흉폭하고 저의가 잔혹해 사회풍토에 큰 영향을 주었고, 원래 법정형 내에서 제일 중한 형벌에 처하지만, 범죄 성질에 따라 공권을 8년 박탈을 선고하여 살인죄로 처벌한다. 리우밍의 어머니 천칭화가 요구한 민사적 보상은 법원의 결재를 거쳐 민정 판사로 넘어간다.”

집단충돌을 막기 위해 급히 러브레터를 공포하다

희대의 살인범 마오우는 중국 저장성 출신, 부친 마오이린은 중앙연구원에 재직 중이고, 형제 첫째, 둘째, 다섯째가 모두 대만 최고의 대학 대만대학교의 재학생이다. 큰누나는 모범생에 둘째 누나는 명문 중학교 일여중 재학생이고, 여섯째 여동생은 다음 학기에 중학교 입학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은 가정환경이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피해자에게 배상해주길 원치 않았다.

일곱 번 찔려 명을 다한 리우밍은 산동성 출신이고, 국군이었던 남편을 잃고 홀로 외동딸을 부양한 천칭화는 금을 삼켜 자살시도를 했다. 이 사건은 당시 국군의 제일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왜냐하면 국군 내에 많은 부역을 강요당해 온 산동 농민들(이후에 토지은행 강도 사건을 일으킨 리스커도 산동성 출신이다) 및 건달 학생(예로 펑후 사건의 팔천 학생)이 있었기 때문에 정보기관은 빨리 이 사건을 어린 아이들 간의 단순한 “치정살인”으로 마무리지어야 했다. 저장 성의 지위 높은 자제가 산동의 홀어미를 둔 여자아이를 살해한 사건으로 보이면 곤란했다. 그래서 악한 마오우(옥칼)가 이전에 고 리우밍(샤오위)에게 쓴 러브레터를 매체에 공표했다.

“어제 널 때려서 미안해. 어젯밤은 잠을 못 잤어. 정말 마지션을 죽이고 싶어.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꼭 죽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만약 걔를 죽이면, 너도 다시는 날 사랑하지 않겠지. 게다가 그를 죽여야 할 필요도 없고, 하물며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잖아. 그러나 나는 반드시 너와 마지션의 교제를 막아야 돼.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일여중에 2명의 여자친구가 있기 때문이야. 한 명은 청궈펀이고, 한 명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아. 너가 날 믿어줬으면 좋겠어. 나 마오 옥칼은 널 괴롭히지 않을거야. 널 영원히 사랑하니까.”

“위메이, 위메이, 내 위메이. 우리 둘 408일의 우정이 끝난 거야? 그래도 너가 내 품에 돌아오길 바라. 이만 줄일게. 나의 마음은 너는 알겠지. 너에 대한 내 사랑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야. 그래, 결국엔 너가 잘 지내고 힘내기만을 바라. 남자친구 사귀지 말고! 영원히 너를 애끓게 사랑하며.”

9월 26일 오후, 타이베이 지방법원 민사법원 판사 장저한은 판결했다: “피고 마오우의 부친 마오이린은 피해자 리우밍의 모친 천칭화에게 129,523원을 배상해야 한다(장례비 1341원, 위로금 10만원, 부양비 28181원 포함).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원고가 요구한 생명손해배상 54만원은 법에 의거하지 않으므로 기각한다.

12월 23일, 마오우는 고등법원에 상소한 후에도 변경 없이 원래의 판결 15년을 받았다. 마오우는 불복해 최고법원에도 재상고했고 고등법원을 거쳐 심사했다. 1962년 8월 23일, 고등법원 형사법원은 마오우가 나이가 아직 어린 점을 보아하여 형기를 다시 책정해 주었고, 징역 7년으로 판결을 바꾸었다. 그러나 검찰관이 불복해 최고법원에 재심했고 다시 고등법원에 넘겨져 심사를 했다. 1963년 2월 22일, 고등법원은 형기 10년으로 다시 바꾸었고 검찰관은 재심하지 않았다, 이렇게 본 사건은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극중의 여자주인공 샤오밍이 말한 것처럼, “너는 왜 모르는 거야? 이 세계는 너로 인해 바뀌지 않아. 나는 이 세계와 같아, 너 때문에 바뀌지 않아!” 계엄령 시대에 이 섬을 압도한 불안감은 어린 소년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통제 불가능한 사회적인 스트레스는 결국 살인, 살해 혹은 자살 사건으로 이어졌다. 허우샤오셴의 <비정도시>와 같이,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글: 관런지얜(문학사 재직자)

출처 : https://newtalk.tw/news/view/2016-12-01/79632